인천 자유공원아래 홍예문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중구) 명 칭 홍예문(虹霓門)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근대주거/ 근대도시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2002.12.23 소 재 지 인천 중구 송학동 2가 20번지외 4필지 시 대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국(건설부)외 1인 관 리 자 중구청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공..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3
독갑다리-숭의동 신태범 박사는 ‘인천 한세기’에서 옛 지명을 설명하는 중에 독갑다리를 소상하게 적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공설운동장 앞 소방서가 있는 언덕에 화장장과 전염병 격리병원인 덕생원이 있었으며 언덕 아래를 흐르던 개천에 다리가 있었는데 이 근방을 독갑다리라고 불렀다”고 했다. ..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2
배다리와 인천이야기 옛날 바닷물이 송림동 로터리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반대켠으로는 숭의동 독갑다리까지였다. 그러니 속칭 전도관 언덕 즉 쇠뿔고개는 인천의 지맥을 버텨주는 허리였던 셈이다. 개화기 이곳을 서양인들이 주목했다. 초대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알렌은 그곳에 별장을 짓고 이어 감리교의..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2
인천 독쟁이 고개 이름이 생겨난 이유 사람들은 대개 '독짓는 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있다. 과연 그럴까? 현지 주민들중 상당수는 "독쟁이는 피난민들이 독을 구워 팔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한다. '독짓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얘기다. 그러나 향토지명을 연구해온 이들의 견해는 다르다. 조우성 시인 (인천 ..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2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타고온 배로 고기를 잡기 시작하면서 ‘북성부두’시작돼 "병어, 새우, 광어.. 못잡는 고기가 없었지"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타고온 배로 고기를 잡기 시작하면서 ‘북성부두’시작돼... 여기가 원래 배를 댈 수 있도록 자연적으로 그랬었어. 처음에는 원래 저 만석아파트 있는데 고가 너머 철길 앞에까지 물이 들어왔었다구. 그 때에는 옛날 대성..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2
인천조선 배공장 “원폭 떨어진건 알았지만, 항복할 줄은 몰랐어” 15일에 퇴근하고 집에와서 일본천황의 방송 듣고 해방 알아... 내가 일하던 인천조선 배공장에서 8월 6일 정오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걸 방송에서 들었지. 당시 사람들은 원자폭탄이라는 말은 잘 몰랐고 그저 위력이 센 폭..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2
이게 생지옥이구나, 신음이 나오더라구요. "이게 생지옥이구나, 신음이 나오더라구요." 소음때문에 소리가 안들려 호루라기로 신호보내 제가 동일방직에 입사를 한 날이 66년도 1월 18일이었어요. 동일방직이 저한테는 첫 직장이었어요. 요즘 사람들한테는 그 당시(60∼70년대)에 봉제공장의 조건이나 환경?가장 열악하다고 알려져 ..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1
1867년의 영종도와 주민들의 모습 1867년 당시 영종도와 삼목도, 용유도 등(이하, 이들 세 섬을 통칭하는 경우 ‘영종’이라 함)에 살았던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는 호적(戶籍)자료를 소개했다. 이번 호에는 이 호적자료를 통해 ‘영종’ 주민들이 어떻게 구성돼 있었는가를 소개해 본다. # 1867년 당시 ‘영종’ 주..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1.28
이순풍(62)할머니가 들려주는 여름음식 이야기 “비올 땐 부침개 하고, 멸치 국물에 국수 말아 먹어야지” 이순풍(62)할머니가 들려주는 여름음식 이야기 요즘 같이 비가 많이 오는 장마에는 생각나는 게 부침개하구 국수 아니겠어. 부침개는 묵은 김치로 해도 맛있고, 호박으로 해도 맛있고 그렇지. 그런데 여름엔 그래도 있는 사람이..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1.28
김금은(89)할머니가 들려주는 피난시절이야기 “시아버지 덕분에 그(피난) 고생은 덜했지” 김금은(89)할머니가 들려주는 피난시절이야기 내가 원래 태생은 충청도 공주인데 열여섯에 부평으로 시집을 왔어. 부평서 농사지을 적에 육이오를 만났지. 난리가 났으니까 어떡해. 피난 가야지. 그때 우리 집에는 아흔 살 되신 시아버지만 ..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