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생지옥이구나, 신음이 나오더라구요." 소음때문에 소리가 안들려 호루라기로 신호보내 |
제가 동일방직에 입사를 한 날이 66년도 1월 18일이었어요. 동일방직이 저한테는 첫 직장이었어요. 요즘 사람들한테는 그 당시(60∼70년대)에 봉제공장의 조건이나 환경?가장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동일방직에서) 쫓겨나고 주안에 있던 원풍물산이라는 봉제공장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했는데 '아! 이건 양반이구나'했어요. 그래도 봉제공장은 일요일은 쉬었고, 밥 먹을 시간은 있었으니까요. 처음 (현장에) 들어가서는 이것이 생지옥이구나 하는 신음이 나오더라구요. 말들도 다 일본말로 하니까 말귀를 알아들을 수도 없고, 큰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들 때문에 말소리도 들리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호루라기로 대화를 하고 그랬어요. 호루라기 '삑' 불고 이렇게 손짓하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들어가고 이게 뭐냐고 인상을 팍 쓰면 실들이 많이 끊어졌다고. 그렇게 손짓 발짓하면서 의사소통을 했어요. 그 때 동일 방직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인천사람보다 전라도하고 충청도에서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관리자들이 우리회사는 충청도 사람들을 빼면 일이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에는 그렇게 악조건인데도 여성들이 일할 공장이 없어서 동일방직에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고요. 나도 먼저 다녔던 언니를 통해서 과장한테 연평도 조기 한 짝 빽쓰고 들어갔어요.
또 예전에는 송월시장 있는 자리에 일본 사택에서 동일방직 관리자들이 살았는데 그 집에서 동일방직에 취직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식모살이를 하다가 공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그 친구들은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벌어 가지고 고향에 보태주고 동생들 학비 대고 그랬는데 억척스럽게 일을 잘 하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거의 공장 근처에서 두어 명씩 자취를 하면서 생활을 했어요. 같이 살면 돈이 덜 드니까 교대반하고 같이 사는 거예요. 내가 1반이면 상대는 2반, 이런 식으로 살면 교대로 방을 쓸 수 있잖아요. 자취집이라고 해야 부엌도 없는 방뿐이었지만, 그 방에서 라면도 끓여 먹고 그러면서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죠. 그때 생활은 비참했죠. 그나마 우리는 집에서 다니니까 괜찮은 편이었는데 자취하는 애들은 제대로 못 먹어서 폐결핵에 걸리는 일도 많았어요. 우리가 동일방직에서 3교대로 근무를 했는데, 새벽 6시, 오후 2시 그리고 밤 10시 이렇게 근무조를 짜서 일을 했어요. 시계가 어디 흔하기나 했나요? 그게 언제더라 아무튼 박정희정권때인가 새마을 운동한다고 동네마다 스피커를 하나씩 달아주었는데 그 스피커에서 4시인가, 4시 30분인가에 새마을 노래가 나왔어요. 그러면 새벽일 나가는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깨서 공장에 나오고 그랬죠.
그러니까 새벽 6시에 일을 하면 5시까지 가서 밥을 먹고 현장에 들어가야 하고 그랬어요. 밥도 그냥 짜디짠 깍두기하고 간장, 멀건 국 하나. 그러면 인제 아이들이 시골에서도 고춧가루를 가져온다고. 고춧가루를 간장에 타 가지고 고추장식으로 만들어서 그거에 밤낮 비벼먹는 거죠. 그게 정말 꿀맛같이 맛있었어요.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있었냐고 그럴 거예요. 그리고 당시에 내가 열 일곱 여덟 살이었는데 그때도 법적으로는 만 18살이 되야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자기 이름이 아니라 언니 이름이나 친척 이름으로 공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우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면, 국민학교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도 못 가고, 공장에 들어가려는데 나이가 안 되니까 언니 이름이나 친척이름으로 들어온 거였죠. 그래서 실제 나이는 열 다섯 살인 친구도 있었어요. 아휴, 그러니 거기서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쉰내가, 쉰내가 나가지고 진짜 코를 찔러서... 그렇게 일하고 집에 오면 목욕탕이 있기나 한가요? 부엌 하나에 방 한 칸인데... 그러니까 윗도리며 바지를 올리는 데까지 올리고 엄마가 목말(목물)을 해주는 게 다였어요. 그 때는 전부 우물물 길어다 먹을 때인데, 그러니 빨래나 제대로 했겠어요? 그 친구들 중에는 동생이 중학교에 입학해서 함께 사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 옆집에도 다락방에서 동생이랑 같이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옛날 엄마들은 그렇잖아요. 어린것들이 동생 데리고 와서 돈 번다고 하니까 밥을 제대로 해먹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국수 삶아 먹으면 같이 국수 먹고, 밥도 같이 먹고 하면서 동네사람이랑 잘 지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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