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에 달라붙어 석탄 한자루씩을 걸머지었지 "달리는 기차에 달라붙어 석탄 한자루씩을 걸머지었지" 만석신고가 생기면서 기차운행 줄어...올해안으로 철거 예정 북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수있었다. "내가 왜정 때 만석동으로 들어왔는데 그때도 저 철길(북해안선)이 있었어. 아마도 일본놈들이 만든..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20
50년전 지어진 집들 사이 좁은 골목 "게딱지처럼 보여도 아파트보다 질기다고” 50년전 지어진 집들 사이 좁은 골목...골목전체가 하나의 집같아 9번지골목에는 낮고 작은 집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그때는 먹고살기도 힘들 때라 어디 집을 크게 지을 생각들이나 했나. 그저 들어가서 살 수 있을 만큼씩만 짓고 살았지. 이..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20
만석동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똥바다 추억들, "바지락잡고 수영하고 그랬지.. 똥바다에서" 만석동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똥바다 추억들, 예전에 만석동 아이들은 똥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똥바다'는 만석동의 변화와 함께 그 쓰임새와 모양이 변해왔다. 만석동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똥바다와 관련된 기억을 한 두..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20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1호 이 지역은 1883년 일본 조계(租界)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租界)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 약 12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본 조계지 경계계단은 중앙에 석조 계단이 형성되어 있고, 양단을 중심으로 급..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20
만석우체국에서 만석 1차 아파트로 가는 길 "피난와 연탄공장에서 거적만 깔고 살았지" 가동 안되는 연탄공장에 여러가족 함께 살아 ... 만석우체국에서 만석 1차 아파트로 가는 길(만해길)은 북성부두와 똥바다로 통하는 길로,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다. 일제시대에 만해길 주변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빈터가 많이 있었다. 박상..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20
박상규 할아버지(81)의 일제시대 만석동 “부두가깝고 공장들 있고 만석동 살기 좋았지.” 박상규 할아버지(81)의 일제시대 만석동 일본화물선과 한국인 노동자들이 북적되는 일제시대 인천항 내가 만석동에 들어온 게 해방전이야. 내 나이 스무 살에 왔으니 벌써 60년이 넘었구먼. 부산에서 대장일을 배우고는 먼저 인천에 올라..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19
김순남 할머니(69세) 순창에서 만석동 올라오던 이야기 “ 막내업고 큰딸 손 꼭쥐고 밤기차 타고 올라왔제.” 김순남 할머니(69세) 순창에서 만석동 올라오던 이야기 . 내 고향이 전남 담양이고 시댁이 전북 순창이여. 순창으로 내 나이 열 아홉에 시집와서 11년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는가. 거 시댁이 섬진강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남원 대강면이..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19
김근수 할머니(72세, 만석동 9번지)의 ‘살아온 이야기’ "내 사는 이 골목은 30년동안 한치도 달라진 게 없어." 김근수 할머니(72세, 만석동 9번지)의 ‘살아온 이야기’ 나 어릴 때? 고향? 거 통일이 되긴 되갔어? 되긴 뭐이가 돼, 통일 돼도 나 같은 늙은인 구경도 못하겠지. 고향도 많이 변했을텐데... 뭐 거기 땅이나 딛어보고 죽겠나 그 안에 다..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19
청학동 외국인묘지 청학동 외국인묘지 청량산 끝자락으로 외국인 묘지가 옮겨진 것은 1965년 6월이었다. 지금 인천역 구내가 된 북성동에서였다. 임해요지인데다 도시계획에 저촉되며 토지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곳은 인천항이 개항되던 1883년에 개설되어 사실상 국내 최초의 외국인묘지였다... 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201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