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독짓는 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있다. 과연 그럴까?
현지 주민들중 상당수는 "독쟁이는 피난민들이 독을 구워 팔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한다.
'독짓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얘기다.
그러나 향토지명을 연구해온 이들의 견해는 다르다.
조우성 시인 (인천 광성고교사)은
독굽는 터가 한두곳 있었는 지는 모르나 중요한것은 독정리란 마을이름이 생겼다는 뜻.
옛부터 경치좋은 정자에서 선비들이 모여 독서하고 담론을 나누던 곳이었는데,
독정리란 발음이 어렵고 와전되면서 독쟁이로 됐다는 게 조시인의 설명이다.
독쟁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동네였다"고 말한다.
해방과 6.25전후의 와중에서 삶의 수단을 빼앗긴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으니,
얼마나 고달픈 날들을 보냈을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독쟁이"하면 비좁은 진흙탕길과 공동묘지를 빼놓을 수 없다.
제물포고교 강하구 교장은 "중고교때 주로 인천교염전과 배꼽산이라 불리던
문학산으로 소풍을 갔다. 그런데 문학산을 가려면 꼭 독쟁이 고개를 지나야 했다.
논밭 사이에 마차나 겨우 다녔던 독쟁이길이 새삼스럽다."고 떠올린다.
독쟁이엔 지난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동묘지가 있었다. 여기엔 유독 중국인들의 묘가 많았다.
인천 숭의동과 용현동에는 일제때부터 채마밭을 일구던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고
이들이 근교원예농업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아마 그때문에 중국인들의 묘가 많았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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