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유일’ 인천에 다 있다
◇최초
▲등대=1903년6월 세워진 인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 6·25 때는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등대는 지난해 바로 옆에 새로 지은 등대에 역할을 넘겨주었다.
▲해외 이민=1902년 12월22일 인천항에서 미국 상선 ‘게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 102명이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이민이다. 이들은 이민 50주년을 맞은 1953년 조국에 15만 달러의 성금을 보내 공업고등교육기관을 지어달라고 청했으며, 여기서 인천과 하와이의 이름을 딴 인하대가 생기게 됐다.
▲극장=부산 출신의 부자 정치국(丁致國)이 1895년 중구 경동에 세운 창고식 건물 ‘협률사(協律舍)’는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신파극과 인형극 등을 공연했으며, 그뒤 한국인이 경영하는 활동사진관 ‘애관극장’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구식 공원=중구 자유공원은 188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축구 보급=우리나라에 축구가 처음 전해진 것은 1882년8월 제물포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 수병들이 인천에서 축구시합을 한 뒤 우리에게 축구공을 선사하고 돌아간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철도=조선 정부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받은 미국인 모오스가 1897년 3월22일 인천 우각리(창영동)에서 경인철도 기공식을 가진 것이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이 됐다. 모오스는 그 뒤 부설권을 일본에 넘겼으며, 일본이 공사를 마무리해 1899년 9월18일 인천~노량진간에 경인철도가 개통됐다.
▲우편 업무=1884년 조선정부가 우편 전담부서인 우정총국(郵政總局)을 세우고 서울~인천구간에서 처음 시행했다. 당시 우정총국 인천분국의 초대국장이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이었다.
▲서구 국가와 첫 국교 맺은 곳=조선은 1882년(고종 19년) 동구 화도진에서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서양의 제국과 처음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자장면·쫄면=자장면은 개항기 인천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인천항의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볶은 춘장에 비벼 먹는 국수를 판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온다. 그 뒤 중구 북성동 중국음식점 ‘공화춘’에서 자장면이라는 정식 이름을 붙여 처음 팔았다고 한다.(그러나 ‘공화춘’ 부분은 확실히 고증(考證)된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쫄면은 1970년대 중구 경동에 있던 ‘광신제면’의 주인이 냉면을 만들다가 우연히 불거져 나온 굵은 국수가락으로 만든 것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최고
▲밀물과 썰물의 차=인천항은 밀물일 때와 썰물일 때의 바닷물 높이 차이가 10여m나 돼 전국 항만 중에서 가장 크다. 그래서 큰 배들이 바로 항구에 댈 수 있도록 갑문(도크)을 만들어 운영하게 됐다.
◇유일
▲수준원점(水準原點)=우리나라 국토 곳곳의 높이를 재는 기준점인 수준원점이 남구 용현동 인하전문대 안에 있다. 이곳은 해발 26.6871m 높이에 설치돼 있으며, 이곳을 기준으로 남한에 있는 모든 지역의 해발 높이가 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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