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관 - 120여 년의 역사
1895년 건립된 대한민국 최초 극장
인천시 중구 경동 238번지, 비공식적인 기록이긴 하지만 국내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이 위치한 곳이다.
애관극장은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던 시점에 인천 경동 네거리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895년 협률사(協律舍)는 부산 출신의 인천갑부 정치국에 의해 창고처럼 생긴 벽돌집을 지어 각종 공연무대로 사용
했다. 날마다 박첨지, 흥부놀부전 같은 인형극부터 창극, 신파연극, 남사당패의 공연을 했다.
협률사는 개항장 인천 이미지에 맞춰 잠시 이름을 ‘축항사’로 바뀌었다가 1926년경에 ‘애관’으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애관은 연극과 영화의 전문 상설관이 된다.
안타깝게도 애관극장은 한국전쟁 중에 화재로 손실됐다 1960년 9월에 개보수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좌석규모는 약 400여 석이었고 영화와 악극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한동안 애관극장 부근의 경동거리는 씨네마 천국이었다.
‘무영의 악마’(인천건설영화사), 복지강화(합동영화사),
‘날개없는 천사’(국보영화사) 등이 제작, 보급되어 우리나라 영화예술의 꽃을 피운 토양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번스타인의 피아노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애관극장의 열기는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현재 애관극장 운영주는 탁경란 사장으로
1972년 극장을 인수한 탁상덕씨의 막내딸이다. 탁 사장은 애관극장이 외환위기때 부도를 맞자 미국에서 돌아와
경매로 이 극장을 재인수 했다고 한다.
1999년 11월 CGV인천 등장으로 애관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분다.
2004년 전면 개보수를 통해 5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영화관으로 재탄생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변신했지만 다시 디지털 영화 붐이 일면서 애관은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
현재 경동거리에는 애관극장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120여 년 세월의 풍상을 견뎌냈듯이 애관은 앞으로의 변화와
시련에도 꿋꿋이 견디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평일 애관극장은 최신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드문드문 들락거렸다.
중고생,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 20대 아가씨들,
대학생 등 영화를 좋아하는 다양한 관객들이 애관극장을 찾았다.
극장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광해’를 비롯해
소지섭의 ‘회사원’, 장동건의 ‘위험한 관계’, 외국영화 루퍼까지 최신영화가 상영중이었다.
가을을 문화의 계절이라 부르지만 사실 가을은 영화계로서는 최대 비수기다.
추석이 끝난 뒤부터 11월까지는 학생들
시험에다 야외 나들이가 많아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도 다음 개봉작 포스터는 극장으로 관객들의 발걸
음을 이끈다.
애관극장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처럼 화려하지도 첨단의 좋은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영
화관이다 보니 많은 돈이 들어가는 시설투자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애관에서는 아직 3D, 4D영화를 볼 수 없다.
애관극장은 원래 400석 규모의 상영관 하나로 출발했으나
지난 2004년 전면 개보수를 거쳐 5개관 860석 규모의 멀티
플렉스 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이런 변신에는 멀티플렉스의 대명사인 CGV가 큰 역할을 했다.
멀티플렉스로 재개관
하면서 최신식 영사기, 디지털음향기, 의자 등도 영화를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교체했다.
1관은 400석, 2·3관은
각 110석, 4·5관은 각 100여 석이다.
영사실은 3개다. 제1관 영사실엔 요즘은 보기힘든 70m와 35m 겸용 영사기가 돌
아간다. 이 기계는 30년이 넘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 대한극장, 부산 대형영화관 등 전국 4곳의 영화관에만 있었던 몸값
비싼 영사기다.
영사실 최경술 팀장은 인천영화의 산증인이다.
10년째 애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전 동방, 미림, 피카디리 극장 영사실
에서 잔뼈가 굵었다. 37년째 극장 영사실을 지키며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애관극장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바꾸고 영화관의 부흥을 꾀했으나 최첨단의 세련된 시설을 갖춘 영화관과 경쟁은
쉽지 않았다. 중구의 중심가 상권이 다른 곳으로 떠난 것도 한몫했다.
애관과 함께 씨네마 천국을 이뤘던 오성극장,
인영극장, 문화극장, 현대극장, 인천극장, 중앙극장, 미림극장 등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애관만이 이곳이 한때
‘씨네마 파라디소’를 꿈꿨던 장소임을 증명한다.
애관은 첨단영상에 세련된 시설은 갖추진 못했지만 극장요금이 1천원 정도 저렴한 편이다.
조조영화 상영시간도 다른
극장보다 늦은 편이어서 아침시간에 관객이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애관극장 상영관에선 광고를 틀지 않는다. 필름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줄면서 필름으로 광고를 만들지 않고 광고
제휴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애관극장에 영화 ‘광해’를 보러 온 차정민씨(군인, 22)는 “초등학교 때부터 애관극장에서 영화를 봤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극장이 그대로여서 좋다”며, “성인이 돼서도 어릴적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디지털 영화의 대세 속 애관극장은 주춤거리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들과 경쟁이 쉽지 않다. 듣자하니
필름영화 상영관이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어느새 필름으로 영화보는 시대가 끝나간다. 시민들은 역사와 스토리를
품고 있는 애관극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힘차게 마음의 응원을 보낸다.
애관극장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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