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재 축제와 용동 큰 우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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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통닭집을 뒤로 하고 용고개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뚜껑을 덮은 커다란 우물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용동 지역을 대표하는 큰 우물이다.
지금은 문화재로만 지정돼 있고 사용하지 않는 용동 큰 우물은 1883년에 만든 것으로, 자연 우물을 현대식으로 고쳐 만든 것이다.
물맛이 좋고,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아 수돗물이 보급되기 전까지 많은 시민들이 길어다 식수로 썼다고 한다.
중구에서는 이 큰 우물의 역사적 의의를 널리 알리고 동인천역 주변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가을에 축제를 연다. 축제는 사물놀이패들의 놀이와 대동굿 12마당을 펼쳐 지역의 무궁한 발전과 평안과 만복을 기원한다.
용동에는 술집이 아직도 더러 있다. 용동은 일제시대에는 권번(圈番)이라고 해서 기생들이 손님에게 술을 따르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던 곳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런 '전통'은 1980년대까지 이어오다가, 구도심이 신도시들에 자리를 내주면서 용동도 내리막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큰 우물을 지나 답동 성당 방면으로 오르다 보면 애관극장이 있는 '싸리재'를 만날 수 있다.
싸리나무가 많은 고개라는 이름의 싸리재는 지금의 경동 웨딩거리와 가구거리 일원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 일대에서 벌어지는 게 '싸리재 축제'이다.
화재가 빈번히 발생해 화기를 진정시키고자 '굿판'을 벌인 데에서 유래했다.
개인의 기복은 물론 지역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재래의 전형적인 '굿'과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를 통해 화합을 다진다고 한다.
싸리재 지역에 위치한 애관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가 그 전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애관극장의 연혁을 보면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개관해 1925년 애관극장으로 바꾸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소실됐다가 1960년 새로 신설됐고, 2004년에는 5개관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동인천동은 신포 문화의 거리와 학생교육문화회관 등으로 아직도 젊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지난날 번창했던 지역이 점점 쇠퇴하는 것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구도심이 다시 번성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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