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지명 유래(중구)
신흥동
(신흥초등하교앞답동성당)
신흥동(新興洞)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의 일부로 인천항 개항 이후에 생긴 마을이다.
개항 초기까지 시의 외곽 지역이어서 사람은 거의 살지 않고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던 곳인데,
특히 청일전쟁 당시 사망한 일본군들의 공동묘지가 이곳에 있었다.
이곳의 화장터나 공동묘지는 그러나 화개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갖기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 시절 별다른 동네 이름이 없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1903년 화개동(花開洞)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바닷가 쪽으로는 1910년대에 매립이 될 때까지 물이 들어오는 곳이 많아 ‘모랫말’이라 불리기도 했다. ‘
꽃이 핀다’는 뜻의 ‘화개’라는 이름은, 그 말이 들어가면 대개가 그렇듯,
이 동네에 사창가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에 들어오는 일본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그를 따라 들어온 일본인 몸파는 여성들이 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생활했던 탓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곳 화개동을 조금 다른 발음으로 ‘화가동’이라 부르곤 했고,
우리말로 ‘꽃골말[花谷村]’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의 사창가는 그 뒤 일제에 의해 총독부가 공식 인정한 공창(公娼)이 됐다가 광복 직후에 폐지된다.
일제는 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곳 화개동의 일부와 주변의 신창동, 와정동(瓦鼎洞) 일부를 합쳐 일본식 행정구역 이름으로 화정(花町)이라 했고 1가동, 2가동, 3가동으로 구분했다.
이중 와정동은 ‘기와를 굽는 곳이 있다’는 뜻이다.
광복 뒤 이곳 화정이 신흥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는데, 글자 그대로 ‘광복을 맞아 새롭게 발전하고 부흥한다’는 뜻이다. 화정으로 불릴 당시 1가동, 2가동, 3가동이었던 곳은 신흥동이 되면서 역시 1가, 2가, 3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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