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 문화의 거리에 도착하기 전 언덕배기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더 가파른 언덕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교회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 개신교의 모(母)교회로 불리는 곳 가운데 하나인 '내리교회'이다.
이 교회 최영후 목사의 말을 빌리면 내리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머물렀던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최 목사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울에 올라가기 전 45일 동안 교회 주변에서 머물며 실제로 가져온 풍금을 연주해 '만복의 근원'이란 찬송가를 직접 부르며 예배를 봤다고 한다"며 "내리교회가 서울의 다른 지역 교회보다 다소 늦게 시작했음에도 모교회로 칭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제법 큰 규모의 교회를 만날 수 있는데 , 이 건물은 1984년 지어졌다.
내리교회의 시작은 1885년이지만 정식 예배당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01년 십자가 예배당으로 불리는 '웨슬리 예배당'을 짓고 나서다. 교회 앞쪽에는 1901년부터 지금의 건물을 짓기까지의 '머릿돌'을 볼 수 있어 옛 교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내리교회는 첫 예배당이었던 웨슬리 예배당 건물을 교회 뒷편 공터에 복원하려 하고 있다.
내동이 우리나라 종교의 탄생지 가운데 한 곳으로 불릴 만한 이유는 이 내리교회 뒤에 국내 최초로 성공회의 씨앗을 뿌린 인천내동 성공회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중구에 따르면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890년 고르페 주교가 지금의 자리에 성미가엘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활동을 하면서부터이다. 당초 교회는 1891년 9월 지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소실됐고, 현 건물은 다시 1956년 준공한 것이다.
내리교회에서 불과 70m 정도 떨어진 성당 건물은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만큼 오래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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