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호에 일곱명씩 태우고 |
내가 만석동에 온게 큰아들이 7살때니까 아마 51년전일게야. 1.4후퇴때 고향 황해도 벽송군 송해면 대소읍에서 연평으로 피난 나와 2년있다가 여기 들어왔으니까. 래부터 중선을 부리던 집이었지. 결혼해서도 고향에 있을 때부터 한아바이(남편)가 배를 부렸어. 그래서 큰아들 데리고 만석동 뻘에 나가 고철을 주워서는 씻어서 팔고 그랬지. 한아바이가 돌아와서는 얼마 있다 작은배를 하나 사서 배타고 다니니까 삐쭉이도 잡아다 팔고 그랬지. 거 배로 잡는 큰 조개 있잖아 그걸 삐쭉이라고 그래. 할 수 없이 빚을 얻어 배를 하나 지었네. 그때부터 배이름이 '대인호'였지. 그래 그 배를 가지고는 굴을 따러 다닌 게야. 저 충청도 울섬, 모래섬, 대섬 이런데로. 예전에 동네에 배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나중에 배들이 좀 모이면서 같이 다니고 그랬거든. 그때는 빨갱이들이 많을 때라 대섬에도 빨갱이들이 있다고 해서는 밤에 거기서 자면 안된다고 나라에서 그랬지. 그래 밤이 되면 잠은 다른 섬으로 가서 자고 해야했어. 그래서는 그 한밤중에 군부대에서 다들 출동하고 비행기가 뜨고 경비정이 몰려오고 탕탕거리며 난리가 난게야. 그래 죄다 군부대에 잡혀가서 조사 받고 나오고 그런 일도 있었다네. 한 여섯 일곱명씩 태우고는 다녔어. 돈 내고 굴 밭을 사서하는 데는 갈 수가 없으니까 돈 안내고 다니는 무인도를 찾아다니고 한게야. 아이들이 댓 살씩 먹었을 때는 뭐 꺼내 먹는다고 그릇이 깨져있고 말이야. 그래 아이들이 추우니까 이불 다 펴놓고 뒤집어쓰고 그러면서 지냈어. 집에 와서는 잠자는 아이들 깨워 밥 못먹었으면 먹여 재우고 그러며 살았네. 둘째는 하와이로 이민 가서도 배를 부리고 사는구먼. 지금까지 배 6척을 만들어 타고 다녔는데 그배 이름이 다 '대인호'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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