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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낭만의 거리는 이제 옛말 길따라 발따라…인천新택리지 - 중구 동인천동

재누리 2013. 3. 14. 21:22

'젊음과 낭만의 거리는 이제 옛말'

길따라 발따라…인천新택리지 - 중구 동인천동 

동인천동에는 내동, 경동, 용동, 전동, 인현동 등 5개 법정동이 속한다.


과거 인천의 번화가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포동 문화의 거리와 동인천역 일대를 가리켰다.

신포동은 '인천의 명동'으로 불리며 패션 1번지로 명성을 날렸고, 동인천역 일대는 먹자골목과 지하상가 등이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다.

신포 문화의 거리와 동인천역을 포함한 동인천동(東仁川洞)은 그렇게 한 때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다른 지역에 주고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한 때 젊음과 낭만이 넘치던 곳

패션일번가로 불리는 신포 문화의 거리
 

동인천동은 구한말~일제시대 인천부 시절 화리, 내리, 외리, 용리로 불리던 일대이다. 지금의 이름인 내동, 경동, 용동, 전동, 인현동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광복 이후인 1946년부터이다.

싸리재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안말, 안골 또는 한자로 내리라 불렸던 내동은 명실상부한 '인천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신포 문화의 거리가 자리잡은 곳이다.

신포 문화의 거리는 서울지하철 1호선의 끝자락인 동인천 역에서 우현로를 따라 경동 사거리 방향으로 언덕길을 넘으면 오른쪽에 위치한다.

신포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지나 일방통행길로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패션 매장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이 '인천의 명동'으로 불린 것은 바로 이들 패션 매장 때문이다. 길지 않은 400여m의 거리 양 쪽에는 남녀 정장에서부터 캐주얼 및 스포츠 매장은 물론, 구두와 악세서리까지 패션을 완성시키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인천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고 할 만큼 번화가였다.

일제시대에도 이곳에는 일본과 서양에서 들여오는 온갖 '잡화'가 모여 성시(盛市)를 이뤘다고 한다. 당시 경성(京城)에서 유행하는 것은 죄다 인천에서 먼저 '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할 만큼 , 붐볐던 곳으로 유명하다.
 
한 의류매장 직원 김모(38·여)씨는 "한 때 신포 문화의 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며 "서울의 명동이라 불리는 것에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번화가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예전 같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얘기처럼 지금은 '패션 일번지'라는 칭호에 어울릴 만큼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더러 찾는 발길들이 있다. 1990년대에는 뱃길을 통해 인천에 들어오는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외국인들이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많이 찾아 매장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