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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고려궁지

재누리 2008. 12. 19. 17:04

▲ 이곳은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줄기차게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터이다. 1232년 6월 고려 고종(재위: 1213 ∼ 1259)은 자주적 정신으로 항몽의 기치를 높이든 고려 무인들의 주장에 따라 지세가 험한 강화도로 천도하여 1234년에 궁궐과 관아 건물을 완성하였다. 1270년 몽고와의 강화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궁궐과 성은 무너졌다.

1637년 병자호란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은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1977년 보수 정화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국민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고려궁지는 지금으로부터 760여년전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쳐하시던 궁궐로 이곳에서 약 39년간(1232~1270) 몽고에 항쟁하였습니다. 강화로 천도해온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뒷산도 송악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궁궐은 몽고와의 화친에 따라 허물었으며 현재 궁지 내에는 강화지역을 다스렸던 유수부가 있습니다. 또한 고려궁지 내에는 외규장각이 있었으며 병인양요때 프랑스군들이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은궤, 지도 등을 약탈해 갔습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고서들도 이곳에서 약탈해간 것입니다. 고려궁지에는 오래된 역사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켜온 고목들이 많으며 아름다운 꽃나무들로 봄이면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 됩니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에 있는 고려시대의 궁궐터로 사적 제133호이다.

정문은 승평문 이고, 양측에 삼층루의 문이 두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관람정보

연락처 : 전화 : 032-930-3525

관람 시간

동절기 (11월 1일 - 2월 28일) : 9:00 - 17:00
하절기 (3월 1일 - 10월 31일) : 9:00 - 18:00

관람에 필요한 시간 : 관심의 여부에 따라 10분 부터 30분 정도.

서울의 고궁을 1/10 정도로 축소해놓은 정도의 규모임.

 

강화군청에서 하차하여 - 신한은행-우리은행 지나 오른쪽 길-왼쪽에는파리바케트 제과점 -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계속 걸어 올라갑니다.

은혜교회와 김상용 비각을 지나 강화초등학교, 고려궁지입니다

 
▲ <강화유수부동헌>
이 건물은 강화 유수부의 동헌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조선 인조 16년(1638)에 유수 김신국이 개수하였으며, 영조 45년(1769)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顯允觀)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현재는 명위헌(明威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인 백하 윤순(尹淳)의 글씨라 한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8칸, 측면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1971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강화유수부이방청>
이 건물은 조선 중기에 강화 유수부내 육방(六房)중의 하나인 이방청으로 조선 효종 5년(1654) 유수 정세규가 건립하여 관아로 사용하던 것을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내부를 개수하고 괘홀당이란 당호를 게시하였다. 1945년 해방이후 지방법원(등기소) 사무실로 임시 사용한 적이 있으며, 1977년 강화 중요 국방 유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강화유수부이방청-1>
▲ <강화유수부이방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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