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외국인묘지
임해요지인데다 도시계획에 저촉되며 토지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곳은 인천항이 개항되던 1883년에 개설되어 사실상 국내 최초의 외국인묘지였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앞다투어 몰려온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외국인묘역 조성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였다.
그해 7월 사망한 외국인을 매장한 것이 시초였다.
1932년에 발간한 ‘인천부사’에 의하면 그곳엔 59명의 외국인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1914년 인천의 각국지계가 철폐되면서 각지에 묻혀 있던 외국인들의 시신을 이곳에 이장하고
서울의 각국 영사관과 인천주재의 유럽인 2명이 관리했다고 한다.
국적별로는 미국인 14명을 비롯 오스트리아 1, 영국 21, 독일 6, 인도 1, 그리스 1, 네델란드 2,
중국 1, 러시아 7, 프랑스 2, 이탈리아 3명이었다.
그들은 대개가 개항 이후 인천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선원 등 초기 ‘인천의 벽안들’이었다.
북성동 해안에서 이장해온 지금의 외국인 묘지는 지금은 있지도 않은 송도역전에 있다.
송도역에서 청학 지하차도 쪽으로 가다 우편으로 ‘외국인묘지’라는 작은 팻말을 끼고 들어가서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안에 그런 곳이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는 위치이다.
그곳 1만6천여㎡에 북성동의 원형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생전에 그곳을 자주 찾은 신태범 박사는 ‘인천한세기’에서 “원형을 따라 충실히 복원하려고 노력한 자취가 역력”하다고 적었었다.
1996년 이훈익옹도 향토사료 시리즈로 ‘인천금석비명집’을 발간하면서 비명들을 일일히 소개한 바 있다.
십자가 등 묘비가 다양한 비문은 한세기가 훨씬 지난 풍상에 희미해졌을망정 그들의 생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시민의 망각 속에 방치되어 있다. 지난 1월 모 언론은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고 보도했을 정도이다.
관리소홀로 묘비를 비롯한 시설물이 파손되고 있다. 그곳은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수있는 충분한 곳이다.
이곳과 서울의 양화진묘지 말고는 집단으로 외국인묘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인천의 명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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