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폭발성, 육감적 도발성을 내장하다
김추자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그녀의 풍부한 성량에
압도되었고 관능적인 몸짓에 매혹되었다.
펄 시스터즈에 대한 글에서 살펴본
특히 여성 보컬리스트의 직설적인 화법이 이 시대를 통해 투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 이전과 달리 가사 및 어주의 화법마저 말 그대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내적
외적(신체적)으로 모두 체현된 것이다.
특히 김추자는 강렬한 폭발성과
육감적인 도발성을 재당하고 있었다.
여기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춤사위와 겸비된 목소리이다.
때로는 애절함과 떨림이 묘한 콧소리를 통해
덧붙여지고, 때로는 고음 샤우팅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두성과 비음 등 전통
창법이 금기 시하는 테크닉을 적극 구사했고. 그 결과 그녀는 가장
반트로트적인 가수였다
(나의 이력서 신중현 "김추자와의 결별" "한국일보
2003년3월18일)'는 신중현의 자설은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은 목소리의 결과 창법, 춤과 외모 등 모든 면에서 당시 여성
보컬리스트에게 기대되었던 고정적인 이미지들과는 다른 파격을 선사했다.
이 여가수들의 직설적인 절규는 솔,사이키 가수들에게 그 절정을 이룬다.
펄 시스터즈의 육탄적인 절규 '임아' 그러나 참으로 이 직설적인 절규가
그 창법에 까지 적중한 경우는 솔.싱거 김추자. 아예 목소리를 떨며 슬픔을
지어내는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을 거의 안 쓰고 내장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드러내놓는 어귀로 이어져 피곤한 도시인의 가슴에 한가닥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가요계의 유행병.퇴폐적인 가사와 창법은'(주간여성)
1971년4월21일)
카리스마 넘치는 김추자의 보컬에 옷을 입힌 스타일의 이름은 소울,
사이키델릭이엇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식적인 '전통음악적'접목이
눈에 띈다.
이것은 다시 말해 '한국적 음악에 대한 신중현의 관심을
엿 볼수 있는 대목일것이다.
이것은 으몌의 사용 같은 데서도 드러나지만
무엇보다도 김추자의 창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늦기전에'에서 중반부에 타령이나 민요, 판소리 창에서 연원하는 창법이
바로 그것일것이다
(김추자는 이후 민요와 관련된 곡들을 간간히 음반에
수록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이런 곳들은 오히려 한국적인 어법의 노래와
서양의 소울 스타일의 노래 사이에 존재하던 아슬아슬한 긴장의 매력을
깨뜨린 것올 들린다)
데뷔곡 '늦기전에'서는 프레이징의 반복이라는 사이키의 정형(定型)외에도
우리 민요에 있어서의 창법적 바이브레이션을 도입, 현대적 가요와 고전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신중현 리싸이틀서 선보인 신인들, 사이키의 김추자
황소가수 소윤석 "주간경향"1969년11월15일)
나는 김추자라는 보석을 통해 한국적 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늦기전에''를 한번 보자 .경쾌한 소울을 구사해 오던 김추자가
뒷부분에서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꿔 우리 타령조로 나간 사실을 일부 팬
은 눈치챗을 것이다.
그게 국내 대중 음악계에서 처음 도입해 본 판소리
창법이다. 하여튼 그곳은 71년1월 노래책 "대중가요 제49집에서 70년도
가요 추천1위로 선정됐다('나의 이력서 신중현, 김추자 대타에서 스타로
"한국일보: 2003년 3월18일)
그런데 이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는 '신중현 사운드'는 김추자의 음반에서
는 대중적인 선에 한정된 것이었다.
보다 대중화된 어법과 사운드가 김추자
같은 대형 스타에게 적용되었다면 본격적인 실험은 가령 데뷔 레코딩의
경우 김추자가 아닌 김선의 '떠나야 할 그 사람'에서엿다고나 할까.
한가지 비교를 더 하자면 펄 시스터즈의 데뷔음반이 전체적으로 통일시킨
스타일을 주조한 반면 김추자의 경우는 곡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춘듯
들린다.
이외에 김추자의 데뷔 레코딩에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같은 건전가요/
군가 스타일이라는 의외의 곡에서는 행진곡 리듬에 중반부에 전조가
이루어지거나.키보드의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덧붙여지는 식으로 나름의
새로움이 첨부되었고, 이 가운데 보컬은 경쾌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독특한 스케일(증 4도음을 구사하는 믹소리디언 스케일)을 이용한
'나무잎이 떨어져서'는 이국적이고도 기묘한 분위기를 들려준다.
그밖에
'이밤이가면/거짓말이야"(1972)에 실린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거짓말이야)같은 곳은 (거짓말)혹은 (거짓말이야)라는 단어의 단순한
반복이 묘한 변주적 확장을 일으키는, 반복과 변주의 화두를 잘 융화해낸
경우라 할 것이다.
(님은 먼곳에) 히트 이후(거짓말이야)(소문 났네) 등 일련
의 김추자표 히트곡들을 발표했는데
이 무렵부터 신중현과는 멀어졌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리사이틀에 게스트 연주자로 종종 참여하였지만
음반으로는 (후회/석양)(1973)이 신중현이 곡을 준 마지막으로 기록되었다.
그이후 김추자는 김희갑 작곡의 (왜 아니올까)(그럴 수가 있나요)나 이봉조
작곡의 (무인도)를 비롯해 번안곡인 (꿈속의 나오미)(마음은 집시)등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김추자의 후기 경향은 펄시스터즈의 경우와
비슷하다.
다시말해 초반의 '신중현 사운드'로 부터 돌파하지 못한듯한
인상때문이다.
연예계의 거물이 된후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김추자는 많은 스캔들과 사건
들에 연루되엇다.
1969년 후반 데뷔 이후 많은 사건들을 남겼던 그녀는
1975년경 '대마초 파동'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공연과
재기의 순간들이 있엇지만 영관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뜻은 아니다.
김추자를 자신의
'요람'으로 지목하는 많은 이들의 증언과 고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불운했던 정치사 속에서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로
군림했다거나. 음악 깨나 듣던 혹은 '의식있는' 젊은이의 청취까지도 은밀하게 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니 나아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모토까지 등장할 정도로
남녀노소를 막론한 만민의 가수였다는 전설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 일 것이다.
가버린 사람아 /김추자
불러도 보았네 잡아도 보았네
내 사랑 바치려고 애원을 하여도
어쩌면 떠나 가버린 사람아
귓속의 속삭임 그대의 목소리
지금도 잊지 못해 그 사람 생각해
어쩌면 떠나 가버린 사람아
그 어디 있을까 무엇하고 있을까
내 마음에 맺힌 사랑
만나고 싶은 사랑 가
가버린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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