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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청산도

재누리 2009. 8. 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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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는 전남 완도군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도서이다. 일명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리우는 이 섬은 고려시대에는 현재의 강진군에 속해 있었다.

그후 임진란을 계기로 정부의 도서금주령(島嶼禁住令)에 의해 한 때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16C말엽 다시 주민이 이주하여 정착하고 1681년(숙종7) 수군만호진이 설치된 이후부터는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1896년 완도군이 설군되어 완도군에 편입되었다.

청산도는 완도군으로부터 약19.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주변에 동쪽으로 거문도, 서쪽으로 소안도, 남쪽으로 제주도, 북쪽으로는 신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정보]

면적 41.80㎢, 인구 3,293명(2001)이다. 청산도(면적 33.3㎢)·장도(長島)·대모도(大茅島)·소모도(小茅島)·여서도(麗瑞島)의 5개 유인도와 무인도를 포함하여 13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생일면(生日面), 북쪽으로 신지면(薪智面), 서쪽으로 소안면(所安面)과 바다 건너 마주한다. 

주도(主島)인 청산도는 남쪽에 최고봉인 매봉산[鷹峰山:385m]과 보적산(寶積山:321m), 북쪽에 대봉산(大鳳山:334m)이 솟아 있고 평지는 읍리(邑里)와 양중리(陽仲里) 부근에 발달하였다. 남쪽 해안에는 10∼20m의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 등의 난대림이 무성하여 경승지를 이루므로 다른 섬들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 등이며, 근해에서는 멸치·도미·민어·갈치·쥐치·장어·문어·낙지 등의 어로가 성하고, 김·미역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특히 청산도를 비롯한 여러 섬은 김장용 멸치젓 생산지로 유명하고, 굴·미역·조개 등의 양식도 이루어진다. 면소재지인 도청리(道淸里)와 완도(莞島)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오간다. 

문화재로는 읍리 하마비(邑里下馬碑:전남문화재자료 108), 읍리 지석묘(支石墓:전남문화재자료 116), 완도 당락리(堂洛里) 성터, 당락리 고분, 백련사(白蓮寺), 동촌리 봉수(東村里烽燧), 도청리(道淸里) 봉수, 부용당(芙蓉堂) 등이 있다

  

 

■ 총면적 48평방 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3천여명으로 1964년에 출장소1개소(모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법정리13개소 행정리 23개소,자연마을 24개소 등 행정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부속도서로서 유인도 5개소 무인도 9개소가 있는데, 모두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옛부터 청산여수라 칭하였고, 청산도와 여서도의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의 "청산도조사보고서"> 

Update 2009.05


            청산도 위치 ▶

▲차량 승선작업 전경 ▲청산도에서 출항 모습

카페리호 모습 ▶
차량30여대 적재가능


■ 청산 고속 훼리호 운항 시간표

시간표는 물량의 증감에 따라 변경
운항할수 있습니다.
특송시에는 특송 시간표에
준하여 운항 됩니다.
하절기 (기간: 3월21일∼9월15일) 동절기(기간: 9월16일∼3월20일)
항차 청산
출발
완도
도착
완도
출발
청산
도착
항차 청산
출발
완도
도착
완도
출발
청산
도착
1 06:30 07:15 08:00 08:45 1 06:50 07:35 08:10 08:55
2 09:50 10:35 11:20 12:05 2 09:50 10:35 11:20 12:05
3 13:00 13:45 14:30 15:15 3 13:00 13:45 14:30 15:15
4 16:20 17:05 18:00 18:45 4 16:00 16:45 17:20 18:05


차량 도선 편도 요금표
차종별 도선료 자동화물비 차 종 별 도선료 자동화물비
경승용차
(티코기준)
18,000 3,200 레미콘15톤 105,000 17,900
소형승용차 20,000 4,400 덤프15톤 105,000 19,000
중형승용차 22,000 4,400 덤프18톤 120,000  
승합차
(12인승이하)
22,000 5,400 덤프25톤 140,000  
승합차
(15인승이하)
24,000 6,500 트랙터 18,000 5,000
승합차
(25인승이하)
60,000 7,600 콤바인 18,000 4,000
승합차
(25인승이상)
106,000 16,300 이앙기 10,000 3,000
1톤~1.4톤 20,000 5,400 경운기 18,000 3,000
1.8톤 23,000 7,600 오토바이
(125이하)
10,000  
2.5톤 29,000 7,600 오토바이
(125이상)
15,000  
3.5톤 35,000 10,300 중장비
(02~03)
53,000 16,800
5톤 40,000 12,400 중장비
(05~06)
94,000 30,300
8톤~9.5톤 80,000 17,400 중장비
(07~08)
134,000 34,200
11톤 94,000 21,600 중장비(10) 200,000 34,200
15톤 105,000 28,700 24톤~25톤 140,000 38,000
18톤 120,000 37,900 *  단 50㎝ 이상 적재시 추가요금 (15,000원)


■ 승객 편도 요금

( )안은 완도에서 들어올때 터미널 이용료 포함한 매표 대금
적 용 대 상 할 인 율 도 서 민 외 부 인
현행요금 지원액 지원후요금
2세에서 초등생 50%  2,500  600  1,900  3,200 (3,450)
만65세이상 경로 20% 4,000  900  3,100  5,200 (5,750)
중.고생 (단체) 10% 4,500 1,000  3,500  5,800 (6,350)
일    반    5,000 1,200 3,800 6,500 (7,050)
■ 해상 풍경
완도항 등대 제주도 왕복선

청산도 입항하면서 본 일몰

청산도 등대 청산도 앞바다



    청산도의 관문인 청산항은 70년대 어업전진기지로 수많은 어선들의 기항지로 그 면모를 자랑하였으며, 여전히 남해 연안 어업의 중요 요충지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청산항은 선을 그은듯한 2개의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와 낙조가 항구의 멋을 흠뻑 느끼게 한다.
    청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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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현황

      마   을 법정리(14개) 행정리(23개)
      인   구 3,100여명
      학   교 초등학교(1), 중학교(1)
      높   이 매봉산(384.5m) 
      소득원 농.수산업
      특산물 김,미역,삼치,문어,마늘,전복
        면   적 42.78㎢ 
         
         
         
         
         
         
         
         

      마을유래

      마을명 마을형성 지명유래
      도청리 현종대(1660년경) 장수황씨 태수씨가 고금에서, 라주정씨 시석씨가 장흥에서 각각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 마을을 이룸. 불목리라 하였으나 국설 도봉청이 설치되면서 도청리라 하였고, 고종대에 와서 진납제로 되고 도봉청이 폐지되면서 도청리라 하였다.  
      도락리 1670년대에 강릉유씨 이성과 성산배씨 홍수가 입도하여 산개척지를 찾아 이주하여 이속에 정착.  당초에는 당리와 합하여 당락리라 하였으나 가구와 인구의 증가로 자연부락으로 분리되면서, 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유교 사상에 의하여 선친들로 부터 도락리라 칭하였다. 
      당   리 효종대(1600년경) 초계최씨, 최일선이 입주함과 동시에 경주정씨가 입주.  마을 주변에 성(城)의 흔적이 있으며, 당초에는 진말이라 하였으나 장보고의 부하였던 청주한씨의 군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석모에 매년 정월5일날 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연유하여 마을명을 당리라 부르고 있다. 
      읍   리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는 흔적으로는 상교동에서 석도의 발굴과 지석묘(고인돌) 유적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산 것으로 추측되며 1610년대에 제주양씨인 우천이 해남어란에서 입주하고 경주정씨가 입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라시대에 읍을 설치하였다고하나 고증할 수 없고 읍을 설치하여 치민하였다하여 속명읍 범미리(즐기미)라 불렀고 지금의 리명은 여기에서 연유.
      구장리 순종무신년에 제주양씨가 읍리에서 이주해 왔으며, 그후 제 성씨가 이주해 마을을 형성했다. 해방후 읍리의 1개반으로 속하여 있다가 1961년 22호로 분리해 리명을 척산이라 하였고 그 후 1963년 구장리로 개칭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권덕리 1740년대에 제주양씨인 철운과 암양권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 권덕리는 읍리에 속하였으며, 범바위가 있어서 호암동으로 불렀다가 1900년에 권덕포라 하였다가 분구되어 권덕리라 하였다. 
      청계리 인조대에 김해김씨가 이주에 왔으며, 효종대에 충주지씨, 경주이씨, 밀양박씨가 사화를 피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때에 왜적과 싸워 많은 사람들이 살상되었으며 그후 인재 및 관리가 배출되어 리명을 장골이라 하였으나, 1930년 마을의 지세와 형세로 보아 맑을청, 시내계의 뜻을 따라 청계리라 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풍리 효종대 진주강씨, 김해김씨가 난을 피하여 이주하여 구성산하에 터를 잡아 살았다. 입도 이주한 강씨가 구성산하에 터를 잡아 구성리라 칭하였으나 그 후 김해김씨 선춘씨가 신풍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흥리 선조말엽 충무공이 전사하자 마하장이었던 함양박씨 이홍이 난을 피하여 강진으로 부터 이주하여 현재 16대손까지 거주하고 있다. 산세가 좋아 크게 번창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부흥리라 칭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음 
      양지리 처음 동촌에 입주하였다가 인조대 안동권씨 득결과 전주이씨가 이주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권득걸이 동천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이곳에 이주하면서 마을명을 양지리라 하였다 
      중흥리 숙종대에 연안차씨, 남평문씨와 언양김씨가 월경대사의 지시에 의하여 이주해와 살던중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뒤 이조중엽에 정종의 후손인 전주이씨들이 입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다.  지명유래 동서로 가른 산맥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명두산, 남으로는 매봉산이 북으로는 대봉산 준경이 두루막아 한복판에 넓은 들을 배경르로 그 중앙에 위치하여 중흥리라 칭하였다.
      신흥리 이조숙종대에 상서리(덜리)에서 연안차씨, 언양김씨가 해안과 가까운 현마을에 해초와 고기잡이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함.  일제시대에는 불당곡,해리,쌍산보를 합하여 신흥리라 부르고 되었다. 
      동촌리 이조선조때 난으로 인하여 연안차씨 산립관 진주정씨가 입주하였으나 대부분 조약도(약산면), 제주로 이주 갔으며 후대에 김해김씨,제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고명선산인 청산도 오대산의 하나인 응봉산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촌리라 칭하였다 
      상서리 인조대에 난을 피하여 이주한 밀양박씨, 언양김씨, 나주림씨가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도에서 가장 먼저 생긴마을이라 하여 상동이라 칭하다 1860년대에 원동리로 분리되면서 상서로운 마을이라 하여 상서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동리 상서리의 인구증가로 1860년대에 언양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60년대에 상서리에서 분리되면서 골리라 불렀으며 이후 후손들이 한자골(동)자를 붙여 원동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산리 선조대에 나주임씨가 강진에서 이주해 왔으며 동시 연안차씨가 입주하여 살고 있었는데 그후 언양김씨, 초계최씨, 경주김씨, 관산위씨, 김해김씨, 추계추씨 등이 입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다.  대봉산, 솔중산, 오산, 다량산관 전면에 노적도를 두고 아침햇볓을 처음 볼 수 있는 광명의 참되고 보배로움을 지니고 있다하여 마을명을 진산리라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화리 조선인조 1630년경 초계최씨가 난을 피하여 입향거주하였으나 자손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하였고, 1790년대에 장흥 관산위씨 금만씨가 이주하여 현재의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주변에 들국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가을이면 국화가 만발하게 되고 마을 뒷산과 옆산의 형곡이 초변으로 되어 있으며, 마을형태가 말자형으로 되어있다 하여 국화국, 꽃화 자를 붙여 국화리라 불렀다 함. 
      지   리 1610년대에 김해김씨가 강진에서 들어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중앙에 카다란 연못이 있어 '못김'이라 부르다 1920년경 지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서리 1690년대 진주강씨가 처음으로 입도 정착했으나 그후 정씨, 김씨등이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대량도라 하였고 어업을 주업으로 삼았으나 그후 려서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모동리 1620년대에 말,방,서씨가 입도하였으며 그후 추씨 김씨등 제 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띄가 많다고 하여 모도라 하였고, 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모동리라 하였다. 
      모서리 1620년대에 마,진씨가 입도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두성씨가 모두 이거하고 리천서씨와 초계최씨가 이주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띄가 많다고 하여 띄섬(모도)라 하였고, 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모서리라 하였다 
      모북리 서기 1620년대에 황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였다 전하고 있으며 그후 최씨, 서씨등 제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모도의 북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모북리, 혹은 소모도라 하였다.

        Update 2006. 6.

        낚시터포인트

        청산도 갯바위 낚시는 섬 전체가 포인트로 4계절 낚시가 가능하며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권덕리 해안,진산리해안, 신흥리해안 등 발길 닿는데로 낚시대를 드리우면 그곳이 낚시터이다.

        아래를 클릭하면 포인트 및 낚시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포인트1 ▷포인트2
        ▶낚시춘추
        ▶조은나라 ▶바다낚시





        민박 및 여관안내

          
        민 박 명 객실수 전화번호 인근관광지 여관명 객실수 전화번호
        청산민박 6 061-552-8800 지리해수욕장 경일장 10 061-554-8572
        지리민박 10 061-552-8801 지리해수욕장 청운장 6 061-552-8888
        한바다민박 5 061-554-5035 지리해수욕장 칠성장 6 061-552-8507
        광주민박 10 061-552-8500 지리해수욕장      
        도청민박 6 061-552-8505 지리해수욕장      
        신흥민박 8 061-552-8580 신흥해수욕장      
        권덕민박 7 061-552-8820 권덕낚시터      
        도락민박 7 061-552-8873 도락낚시터      
        하나민박 6 061-555-2766 지리해수욕장      
        앞개민박 5 061-552-8703 읍리낚시터      
        범바위민박 5 061-554-0162
        011-626-8531
             
        읍리낚시터 포인트 : 섶머리, 하늘땅끝, 상섬


        KBS1 TV 한국의 미 [22회], 보리밭이 있는 풍경, 청산도 (2002.5.14방송)

        봄에 아름다운 것은 꽃만이 아니다. 우리들 옛 추억의 한자락 초록빛 보리밭...물결치는 그 초록바다에 들어서면 바람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사르락 사르락, 봄 한철 사각거리던 보리물결 스치던 소리...너른 보리밭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하게 밀려드는 향수(鄕愁).
        마음은 벌써 푸르게 사락거리는 보리밭으로 달려간다. 보리밭 사잇길로...노래의 한 구절속으로 들어가 본다.

        ▶동영상으로 보기

        ▶ 생명의 보리밭...
        봄이 물이 한창 오른 이 계절. 5월의 자연에서 아름다운 것은 꽃만이 아니다. 꽃도 아니고 녹음도 아니면서 봄의 감동적인 색깔로 밀려오는 것이 있다.그것은 들녘의 푸르름이요, 그 가장 대표적인 물결은 보리밭이다. 겨우내 얼어 붙었던 차가운 땅밑에서 싹을 틔워 억척스럽게 자라온 초록의 보리밭,그 생명의 보리밭으로 간다.
        ▶ 그 가슴시린 유년의 기억...
        삘릴리 삘릴리 보릿대 하나 쑥 뽑아불던 보리피리의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보리떡, 꽁보리밥... 그리고...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소년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보리서리... 배고팠던 유년의 기억들은 이제 '보리밭' 물결을 따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 진도아리랑 만큼이나 가슴 시린 푸른 보리밭...
        푸른 섬,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에서 진도아리랑의 황톳길로 유명해진 남해의 한 섬이다. 청산도에 5월이 찾아오면, 진도아리랑이 울려 퍼지던 황톳길은 보리밭 사잇길로 새단장을 시작하는데...
        ▶ 고향생각...
        흙냄새 가득한 보리밭가에 서면 묻어나는 풋풋한 보리냄새...보리밭엔 가난했지만 마음은 넉넉했던 고향의 풍경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굶기를 밥먹듯 했던 '보릿고개'의 애환은 이제 추억이 됐지만, 그 서글픈 배고픔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아련한 기억처럼 푸른 보리낟알이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하면 봄도 더욱 깊어간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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