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공부방/추억의자료

시로 읽는 인천

재누리 2009. 3. 25. 18:03

인천의 역사를 쉽게 접하고 간접적이나마 인천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와 소설이 있다. 시와 소설, 그리고 인천역사의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인천’이란 공간이 지닌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흔히 인천을 조선의 인후지지(咽喉之地)라 하듯 인천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와 소설은 여럿 있다.

   
 
  ▲ 제물포항 부두  
 

인천 관련 시는 여럿 있지만 지면 관계상 『인천 개항장 풍경』(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06)에 수록된 몇 편을 부분적으로 소개한다.(이외의 시에 대해서는 이 책을 살펴보기 바란다.)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데요,
이곳은 인천(仁川)에 제물포(濟物浦),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김소월 ‘밤’의 2연

시적 공간이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이다.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것으로 인해 거기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 또는 그리움 등의 심사가 더욱 컸으리라.

놀 저물 때마다 멀어지네 내 집은
한 달에 보름은 바다에 사는 몸이라
엄마야 압바가 그리워지네

-김동환 ‘월미도 해녀요’의 1연

시인이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엄마야 압바가 그리워지네”라는 구절에 집약돼 있다. 부모 곁을 떠나 월미도에서 해녀 활동을 해야 했던 소녀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그리움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이 시 1연과 3연의 각 첫 행, “놀 저물 때마다 멀어지네 내 집은”이라는 시구에서는,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진주야 산호를 한 바구니 캐서/이고서 올 날은 언제이든가(2연)”라는 구절에서는, 그가 부모와의 만남에 대한 믿음을 점차 잃어가고 있음을 드러낸 듯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이처럼 일제 강점의 현실 상황 속에서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에게 보인 파인의 시적 관심과 애정이 실로 적지 않았다는 게 이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시 「월미도 해녀요」에서는 그것이, 당시 월미도 해녀의 삶의 실상을 드러낸 셈이다. 특히 이 시가 민요시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이와 같은 해녀의 삶의 문제가 단지 한 개인 또는 가정보다는 집단 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 인천역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汽笛)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流浪)과 추방(追放)과 망명(亡命)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
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나릴제

축항(築港) 「카페-」로부터는
술취한 불란서(佛蘭西) 수병(水兵)의 노래
「오! 말세이유! 말쎄이유!」
멀리 두고 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

-박팔양 ‘인천항’의 2-4연

‘상해로 가는 배’ ·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 · ‘술취한 불란서 수병’ 등은 개항 이후 달라진 1920년대 인천 항구의 이국적인 광경을 보여주는 대상들이다. 세계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나타내 주기에 충분한 제재들인 것이다.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불란서 수병뿐만 아니라, 산동성 또는 경상도가 고향이라는 노동자(5연)들에게서 이러한 면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이 시의 2연과 3연에서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이 배를 타고 ‘떠남’과, 세계를 유랑하는 코즈모폴리턴이 부두에 ‘내림’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1920년대를 전후해 국내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외국으로 떠나거나, 죄가 없어도 국외로 내쫓기며,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남의 나라로 몸을 피해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데 반해, 국내를 출입하는 세계주의자들의 수는 오히려 증가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인천항야경  
 

대합실
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취」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 김기림 ‘길에서 - 제물포 풍경’의 8연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식이 거행된 것은 1899년 9월 18일로, 이 작품들이 발표되기 30여 년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기차’ 및 ‘역 대합실’ 등의 모습은 시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1연의 「기차」에서처럼 석양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광경은 더욱 그러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이 근대화된 삶의 현실 상황이 당시 이곳에서 생활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의 여건을 제공해 준 것이 아니었음은, 8연의 「대합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는 대합실 ‘안’과 ‘밖’의 대비를 통해 그 안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깨끗하고 순결한데 반해 그 밖에서 그는 다시 때가 묻을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

  -박인환 「인천항」의 7-9연

이 시는 광복 이후 분단이 가시화되기 직전 우리나라의 암울한 분위기가 상징적이면서도 꾸밈없이 표현돼 있다. 이는 특히 이 시의 “밤이 가까울수록/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짠그의 불빛은 푸르며/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라는 구절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인천항에 진주한 미군의 성조기를 보고 시인은 식민지 향항(홍콩)의 서글픈 운명을 떠올려 보면서 앞으로 우리 조국에 닥쳐올 분단체제의 불행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이 녹아있는 시를 접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에서 역사적 자료를 찾는 것과 같다. 인천의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은 여럿일 것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든가 답사를 한다든가 혹은 강의를 듣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떤 자료를 읽어야 할지, 어떤 장소를 택해야 할지, 어떤 곳에서 무슨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등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인천 개항장을 배경으로 한 시는 이외에도 여러 편이 있다. 독자들에게 시인과 시의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지용의 「뻣나무 열매」, 윤복구 「연수동(延壽洞) 며누리 넋」, 정지용의 「오월소식(五月消息)」, 오장환의 「해항도(海港圖)」,  김광균의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 곡(哭) 배인철군」, 한하운의 「작약도」, 조병화의 「추억」 등이 그것이다.
  < ※ 자료제공=인천시 역사자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