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에 기계를 세우고 |
5.16 혁명이 일어나고 몇 해 안 지나서였을게야. 삼화제분에 일할 때 였는데, 거기 정식직원들은 노조가 원래 있었고 뒷마당이나 바께스(밀가루 받는 곳)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었지. 내가 그 하청업체에서 바께스 책임자로 있었는데, 우리도 삼화제분 노조에 가입시켜 달라고 해도 안 해주는 거야. 회사에서도 노조에 사람들이 불어나는 걸 꺼렸었거든. 에이 그러면 우리도 따로 노조를 만들어보자 해서 동네에 조동완씨하고 몇 명이 모여서는 비밀리에 그 일을 진행했었지. 우리가 뭐 노조를 어떻게 만드는 지 알기나 했나. 그래 판유리(한국유리) 노조에 가서는 근로기준법을 좀 알 수 없겠냐 물어보고는 책을 얻어 왔어. 그 책을 얻어와서는 각자 읽고 공부를 한 게지. 그 책이 다 한문이었어. 구학(한문)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나. 그래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공부하고 모여서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그러면서 노조를 만든 게지. 내가 알기로는 삼화제분 앞에 같이 일하던 사람 집에 모여 한 한 달을 그래 공부한 것 같아. 노조가 만들어지고는 뒷마당하고 바께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 50명이 되었는데 전부 노조원으로 가입했었지. 나도 나중에 노조가 세워지고 쟁의가 일어나니 '근로기준법'을 좀 알아야 될거 아니야. 그래 그 책을 구해 가지고 그걸 보아가면서 공부한 게지. 근데 그게 아주 맹랑하더라고 그게 말 잘하는 사람,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 이리 같다 붙이면 이렇게되고 저리 같다 붙이면 저렇게 되고 그러더라고. 그러니 권력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약한 사람은 지고 그러니 소용이 없어. 지금도 마찬가지 아녀. 원래 노조를 만든 이유가 중간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먹는 하청업체를 없애자 해서 였지. 정식 직원들은 일을 하던 안 하던 매달 월급이 일정하게 나오잖아. 하지만 일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을 못하거나 하면 식구들 먹여 살리기 힘들잖아. 게다가 그나마 받는 돈도 하청업체에 얼마씩 떼이고 있었으니 얼마나 맞지 않느냔 말이지. 때문에 뭉쳐서 한 번 쟁의를 일으킬라고 준비를 한 게지. 그래 노조가 세워지고 나서 중앙 노동청에 우리가 쟁의를 하겠다 하니 거기서는 안 된다 하는 게야. 그도 그럴 것이 그때가 군사혁명 일어나고 얼마 안되었을 때니 쟁의하겠다는 게 되나 안되지.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식량이 없었잖아. 국민들한테 배급할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분회사를 멈추면 밀가루가 공급이 안되고 식량난이 일어나면 군사혁명 세력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잖아.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던 게야. 그때만 해도 밀가루 한 포대에 400원인가 할 때인데 밀가루를 자꾸 뽑아내도 모자라 뒷거래로 700원씩 팔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우리야 뭐 밑질 것이 있나. 그래 알면서도 쟁의를 일으킨 게지. 소위 중앙 노조에서도 하지 말아라 말렸었는데 우리들끼리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래도 해보자 합의를 했지. 그래 약속을 하고는 지금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는구먼. 12시에 기계를 세우기로하고 바께스의 기계 스위치를 내가 내렸지. 바께스에서 밀가루를 안 받아내니 탱크가 꽉 찰게 아냐. 한 1시간 반정도 있으니 공장 전체가 서버렸지. 회사에서 경찰에 연락해서 공장을 경찰들이 다 둘러쌌는데, 밀가루를 실은 차가 공장을 나가려고 하는 게야. 그래 우리 동료 중 하나가 그 트럭 바퀴 밑에 누워서는 차가 못나가도록 막았어. 그러니까 경찰이 트럭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우리를 다 실어서 경찰서로 데리고 갔어. 그래 주동자 급으로 분류된 사람은 고등군법회의에 가서 재판을 받았어. 나중에 혁명세력에 있던 사람 중에 고향이 이북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모두 겨우 풀려났었지. 그렇게 해서 하청업체를 없애고 하청업체에 있던 사람들 거의가 정식직원이 되었었는데, 요즘 삼화제분에 하청업체가 다시 생겼다는구먼. 다른데도 다 마찬가지고 말야. 요즘 정부나 세상이 노동자들을 너무 괄시하는 것 같아.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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