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잘 몰라도 한 70년대 초, 이때 쯤 일거야. 대성목재앞에서 두세 명이 탈 수 있는 배를 타고 노 젓고 다니면서 바지락을 많이 잡았어. 여기 한국유리 앞에도 바지락이 쭉 깔려있었고. 그리고 지금 저 선창 앞에 매립된 데 있잖아, 거기를 ‘갈매기등’이라고 했는데 거기도 바지락이 많았었지. 그 때 나는 여기 괭이부리 선창에서 노 젓는 배를 타고 영종도, 용유도까지 조개 캐는 사람들을 실어다 주고 뱃삯으로 30원인가 50원을 받았어. 그때 하루동안 바지락을 잡으면 대여섯 부대 정도를 잡았지. 여기는 바지락, 조개 이런 것들이 아주 많았어. 예전에 우리 아버지하고 나하고 배를 타고 나와서 여기 갈매기등에다가 그물을 쳤었는데,
나중에 와서 보니까 물이 말라버린 게야. 그때는 처음이라 잘 몰랐던 게지.
그런데 그 그물에 꽃게들이 막 걸려 있었어. 그래서 그걸 건져 가지고 수문통에 있는 중앙시장에 내다 판 일도 있다네. 지금이야 다 매립해 버렸지만, 그때는 수문통까지 뱃길이 다 연결되어있었어. 그때는 여기 기초소재 자리에 한염해운이 있었다고. 그 한염해운에서 밀, 석탄, 솜, 설탕, 뭐 이런 것들을 다 여기로 들여와서 쌓아 놓았지. 빳지(바지선)로 들여왔는데 그 때야 빳지도 다 목선이었지, 철선 생긴지 얼마 안됐으니까. 그 때는 장비가 없었으니까 그런 물품들을 사람들이 가대기(하역작업)를 해서 배에서 풀고 했는데, 배에서 하역하는 노가다를 하면 그게 힘은 들어도 수입은 괜찮았거든. 그 일은 ‘돈내기’로 하는 거야. 한 대 풀면 얼마 이런 식으로. 우리 매제도 여기서 일하고 그랬는데, 그때 가대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이도 많이 먹고, 죽은 사람도 있고 그래. 또 이런 물품들이 여기로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작은 배로 노를 저어 가지고 몰래 그걸 훔쳐다가 팔아먹기도 했어. 지금에야 이런 데 고철 떨어져 있어도 잘 안 주워가지만, 그때는 고철 같은 거 하역작업 하면서 일부러 물에 빠뜨렸다가 나중에 그걸 건져다가 팔아먹기도 하고 그랬지. 없이 사니까 다들 그렇게 살았었지. 예전에 괭이부리 선창에는 영종객선이 다녔거든. 영종배가 그때는 목선이었는데,
정확히 몇 명 싣는다 이런 정원은 잘 모르겠지만 객선이니까 배가 꽤 컸다고. 그 배가 물이 빠지면 들어오지를 못하고, 물이 밀면 시간대 맞춰서 들어오고 했어. 그때 영종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잡곡 같은 거, 곡물 같은 거 이렇게 영종에서 난 걸 갖다가 여기 부두에서 팔기도 하고, 저기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자기들 필요한 생필품 같은 거 사가지고 들어가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여기에 장삿꾼들도 많이 왔었어. 차로 물건 싣고 들어오고, 나가고 해서 사람도 참 많았었지. 한마디로 얘기해서 부두에 영종배가 들어오면 시장식으로 이런 게 형성이 되어서 손님들도 많고, 그 때는 참 경기가 좋았었지. 인심도 참 좋았어. 그러다가 아마 한 80년대 초에 영종배가 없어졌을 거야. 우리가 80년도까지 바지락잽이를 했으니까... 여기 또 재미있는 것이 국회의원이나 무슨 출마만 하면 공약으로 여기 부두 해준다 이거여. 여기 부두를 공약으로 건 사람은 국회의원이나 그런 거 나오면 동네사람들이 많이 밀어주자 했거든. 공약으로 걸어놓고 막상 당선되고 나면 여기 쳐다 본 사람은 없었지. 그래서 옛날에 몇 번 속았다고. 국회의원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는데도 이 부두는 변한 게 없어. 길도 넓어진 게 없고, 변했다면 한염해운이 기초소재로 바뀐 것 정도지. 옛날에 여기서 가대기 일하고, 조개 잡고 이런 일하던 사람들이 다 이 근처에 살았어. 만석부두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