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얼마 전 세상을 타계한 작사가이며, 시인이었던 박건호의 작품이다.
박건호가 청년 시절 무렵 YWCA 활동 중에 남이섬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
모닥불을 피워놓고 단원들과 밤새 이야기를 하던 중에 생각이 나서 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1972년 박건호가 처음으로 이 가사를 만들어 방송국 로비에서 만난 박인희에게
건넸을 때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박인희는 1970년 뚜아에무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박건호는 무명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통사정 시도한 끝에 가사를 건네받은 박인희는
받아든 글을 여러 번 읽어 보니 자신도 모르게 멜로디가 생각났다고한다.
집에 돌아와 며칠 후 다시 보아도 처음 그 멜로디가 떠올라 그대로 악보에 그렸다고 한다
박인희는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을 진행하다가
복도에서 몹시 추워 보이는 한 청년에게서 이 가사를 받았다고 나중에 술회를 하게 되는데
그 청년이 나중에 작사가로 대성하여
'새끼손가락' '내 곁에 있어주' '잊혀진계절' '아 대한민국' '토요일 밤에' '빙글빙글' '찰랑찰랑'등을 작사하게 된다.
그녀는 솔로로 전향하여 이 가사에 멜로디른 붙여 곡을 만들어 부르는데
이 노래는 두 사람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 준 노래가 되었다.
1970년대를 우리는 흔히 격동의 시대라고 부른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라는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시대였으며
그만큼 아픔도 뒤따르는 문화의 발전 속에 로맨틱한 그룹들이 탄생했는데
그들이 바로 뚜아에무아(toi et moi, 불어로 '너와 나')라는 이름의 '이필원 & 박인희'의 등장이다.
명동에 있는 음악다방 디제이있던 박인희와 그 업소에서 노래 부르던 이필원과 1969년 운영적으로 만나게 된다.
당시 숙명여대 '불문학과'에 제학 중이던 '박인희'는 특유의 맑은 음성과 고운 연주로
통기타 시대를 열어 놓았고 민중가수로서의 출발과 함께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해체되어 박인희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박인희는 이해인 수녀와 친분이 두터운 친구 사이라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그녀는
현재 독신(이혼)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나 국내에는 그녀의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모닥불 / 박인희
박건호 작사 박인희 작곡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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