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하얀 나비’의 가수 김정호와의 마지막 인터뷰(1)
기사일자 : 2006-07-27
그리고 85년 11월29일 떠났다.
33년 8개월간의 짧은 생애. 마치 ‘33과 3/1’ 속도로 도는 레코드판처럼,
그의 삶의 수치는 그 시점에서 멈췄다.
그와 가졌던 인터뷰, 그 기억이 지금도
새삼스럽다
74년 5월 ‘작은 새’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발표하며 통기타 가수 대열의 선두에 섰던 그.
당시 ‘김정호 노래의 코드로 기타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하얀 나비’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꽃잎’ ‘푸른 하늘 아래로’ ‘보고 싶은 마음’ 등을 발표하며
한국적 포크를 지향했던 김정호.
통기타를 멘 채 지그시 눈을 감고 꿈꾸듯이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모습.
그러나 그는 이미 폐가 몹시 나빠 투병 중이었다.
‘폐결핵 가수 김정호’라는 말은 이미 나돌고 있었으나 음악만큼은 누구보다도 건강했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그는 75년 ‘대마초 파동’과 함께 대중들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마초 가수들이 해금되어 하나 둘씩 활동을 재개할 때도 그는 등장하지 않았다.
‘행방불명설’ ‘잠적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로 온갖 추측 보도도 많았다.
그러던 그가 84년 홀연히 나타났다.
83년 6월부터 11월까지,5개월이라는 최장 녹음시간을 기록한 4집 앨범으로.
호흡조차 힘들어져 한 곡 녹음하는 데도 수십 번씩 끊어 편집해야 했던 이 앨범, 결국 ‘유작’이 되어버린 이 앨범을 들고.
그러나 이 앨범이 나온 뒤에도 그는 공개석상을 기피했다.
이 앨범 중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가 제법 방송을 타고 있었지만
그는 어느새 ‘얼굴 없는 가수’가 되어 있었다.
이 노래가 같은 요양소에서 보게 된 어느 여 환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애틋한 얘기만이 화제가 된 채.
필자가 그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 무렵으로 처음에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입장을 이해해달라.’고도 했고,
또 통과의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석 달을 매달려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조건은 그냥 만나는 것,
그리고 자기와 나누는 얘기는 절대로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것. 그의 아파트에서였다.
그 핏기 없던 얼굴, 그리고 기침소리 속에 겨우 나누던 얘기들. 정말이지, 이러한 식의 기사는 나도 결코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송창식의 고집에 관해 얘길 했으며 김수철의 ‘별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에 관해 서로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 얘기에 따라 빙그레 웃기도 하고, 간호원이 주사를 놓으러 왔을 때는 나에게 ‘잠깐이면 되니 기다리라.’고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몇 번이나 일어서려 했지만 그가 자꾸 괜찮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노래 ‘님’을 들어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까지 그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가 음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님’. 그 때, 그 느낌이란. 그 노래를 듣는 내내 엄습해오는 불길함을 어쩌지 못했다.
그의 아파트를 나서는 늦은 시간에 그는 마침내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공기 좋은 야외로 함께 나가보고 싶다고. 의외로 그가 쾌히 승낙했다.
그러면서 말했다.“기왕이면 사진 잘 받는 곳으로 가지.
그리고 오늘 내가 했던 얘기 중 노래에 관한 얘기라면 기사로 써도 좋겠는 걸….
”한번도 웃지 않고 옆에 있던 부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다음다음날 아침, 우리는 ‘뚝섬’엘 갔다.
우리가 서로 약속한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지만 정작 촬영은 오후 다섯시 무렵에나 끝났다.
그가 무리를 하면 안 되기에 사진 찍는 중간중간 쉬어야 했고
그런 중에도 그는, 그때까지 밝히지 못했다던 얘기들을 서슴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얘기, 탈영해 군 영창에 갇혔던 얘기까지. 띄엄띄엄 노래를 불러 이은 그의 마지막 노래처럼 촬영도 그렇게 되었다.
오히려 나는 이 정도의 사진이면 충분하다고 말렸으나 되레 그가 사진 찍는 일에 더 열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진 촬영에 임하던 그의 표정이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함께 동행했던 그의 후배에게 담배를 빼앗다시피 해 때론 냄새만 맡기도 하고, 직접 불을 붙여 입에 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의사는 내게 더 이상 노래를 부르면 죽는다고 경고했지, 허나 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되레 죽을 것 같아.”
‘남은 열정을 모두 국악에 바치겠다.’고 밝히던 김정호, 이 말은 그가 자신 있게 한 말이라서 더 안타깝다.
얼마 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이 ‘병’ 때문이 아니라 ‘한’ 때문이었다고 생각되어졌다. 허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그에게 늘 부족했던 ‘산소’를 노래 속에 다 연소시키고 행복하게 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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